[마켓파워] SK매직, 소송 뒤 숨은 실적·점유율 경쟁

김성훈 기자 기사승인 2023. 05.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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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금융감독원
마켓파워 컷
SK매직은 최근 쿠쿠홈시스를 대상으로 정수기 관련 특허 침해·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쿠쿠홈시스가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 SK매직의 주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윤요섭호 SK매직이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선 이유가 단순히 '기술 방어'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렌탈 시장 포화로 인한 실적 경쟁과 동남아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염두한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매직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45.7% 감소했다. 지난해 말 기준 영업이익도 635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0.94% 가까이 축소됐고, 당기순이익 역시 15.97% 넘게 줄었다. 2021년에도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12.62%, 당기순이익은 11.94% 감소했다. 국내 렌탈 시장이 포화에 이른데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수급 문제로 공장 가동률까지 크게 떨어진 것이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SK매직의 가전제품 생산 공장 가동률은 전년도보다 18%포인트 떨어진 66%에 불과했다.

SK매직의 부진이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최근 SK매직이 쿠쿠홈시스를 대상으로 낸 소송도 실적 하락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렌탈업계에 따르면 SK매직은 지난 1일 쿠쿠홈시스를 대상으로 특허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식재산권은 기업이 비용을 들여 획득한 핵심 역량의 일부이기 때문에 특허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SK매직 관계자도 소송 배경에 대해 "얼음정수기 특허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소송 전에 쿠쿠홈시스에 경고장 발송 후 답변을 기다렸지만, 해결 의지가 높지 않다고 판단해 소송을 강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이유 없는 소송은 없다"고 말한다. 특허 관련 소송의 경우 단순히 기술 침해 문제나 소유권 문제를 넘어 실적과 시장 점유율 문제가 얽혀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SK매직의 실적은 2년 연속 악화한 반면, 쿠쿠홈시스의 경우 2021년에는 영업이익이 20.82% 성장했고 당기순이익은 51.37%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26.92% 떨어졌지만 매출은 11.11% 늘며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작년 정수기 등의 매출도 판매 부문에서 17.925%, 렌탈 부문에서 1.98% 커졌다.

특허 침해 제품 출시와 소송 시점이 차이나는 것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SK매직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1일이지만 문제가 된 쿠쿠홈시스 제품은 수년 전에 출시됐다는 것이다. SK매직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쿠쿠홈시스의 '인앤아웃 아이스 10'S 정수기는 지난 2019년에 시장에 나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소송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해도 출시 3년 가까이 지난 제품에 대해 소송을 거는 것에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SK매직은 2019년부터 침해 사실을 인지했다는 입장이다.

SK매직의 전체 매출 중 렌탈 부문의 비중은 약 80%로 매우 크다. 그 중에서도 정수기 부문은 30% 가량을 차지한다. 반면 SK매직의 현재 국내 정수기 렌탈 점유율은 15%, 쿠쿠홈시스는 13%로 차이가 적다. 특히 이번 소송의 쟁점이 된 쿠쿠홈시스 얼음정수기 인앤아웃 10's 라인의 올해 1월부터 4월 판매는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K매직이 쿠쿠홈시스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SK매직은 소송 관련 계획에 대해 "쿠쿠홈시스 해당 모델의 즉각적인 판매 금지 촉구와 함께 해당 모델의 판매로 추산되는 손해배상액을 산정하여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윤요섭 SK매직 대표가 재무통으로서 기대 속에 선임됐지만. 취임 이후 계속해서 실적이 좋지 못해 고민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21년 선임된 윤요섭 SK매직 대표는 동양매직을 인수해 SK의 이름을 단 장본인으로, SK네트워크의 전신인 ㈜선경으로 입사한 SK맨이다. SK네트워크 국제금융팀장과 금융팀장·재무실장을 역임했고, SK매직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재직하다 대표로 선임됐다. '재무통'이라는 윤 대표의 별칭이 '실적 개선을 위해 소송도 불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 렌탈 시장에서의 점유율 경쟁이 이번 소송에 영향을 미쳤다는 목소리도 있다. 쿠쿠홈시스는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정수기 렌탈 부문 시장점유율 2위 기업이다. 지난 2021년에는 현지 진출 7년만에 100만 계정을 돌파했고, 작년 말레이시아 시장 매출은 2932억원이다. SK매직도 2019년 말레이시아 시장에 진출해 성장 중이지만 아직 계정 수는 11만개, 매출 635억원으로 쿠쿠홈시스와 차이가 크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투자하면서 차입금은 늘었다. SK매직이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성 차입금은 지난 2018년 329억원에서 2019년 1721억원으로 급증한 이후 2021년 3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4134억원으로 불어났다. 반면 작년 기준 현금성자산은 410억원으로 단기성 차입금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까지 건전성 기준인 30%대를 유지하던 순차입금의존도 역시 지난해 53%를 넘어섰다. 안수진 선임연구원은 "말레이시아 렌탈 계정수 확보를 위한 투자 소요 증가로, 본격적인 차입금 상환에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무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윤 대표로서는 취임 3년차에 실적에 이어 재무 악화까지 과제로서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기술 특허는 주요 제품과 관련이 깊을 수록 실적과 시장 점유율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며 "정수기 부문 매출 비중이 적지 않은 만큼 SK매직이 경쟁에서 우위를 갖고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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