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물탐구] ‘전자시계에 운동화’… 직접 PT 하는 정의선式 리더십

최원영 기자 기사승인 2022. 05. 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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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시계 차고 운동화 끈 질끈, 격식 벗고 발로 뛰며 직접 PT
정주영·정몽구 代이어 '품질 경영'…완벽 앞세워 고객 신뢰 확보
현대차 '퍼스트 무버' 가속폐달…"인간을 위한 도전 계속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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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폰이 없어지고 로봇을 항상 데리고 다니게 될 거라 봅니다.”(2021년 3월 임직원 대상 타운홀미팅서)

“창업주께서 ‘현대’를 처음 시작하실 때 정비소·중동건설·한강대교 등으로 일구셨었고 당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형이라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22년 4월 미국 뉴욕 특파원 간담회서)

부회장 시절 ‘온화한 리더십’, ‘조용한 리더십’의 표본이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파괴적 혁신가’, ‘퍼스트 무버’ 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까지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여전히 묵묵하고 품질을 중시하는 특유의 성향까지 그대로다. 달라진 건 가야 할 길이 더 명확해졌다는 것 뿐. 인류에게 더 가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비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가장 창의적이고 스마트한 모빌리티 솔루션을 선보이겠다는 약속이 그 길이다.

운동화를 신고 카시오 시계를 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간을 위한’ 긴 여정의 로드맵을 완성해 가고 있다. 국내외 대통령과 재계 수장, 직원·노조까지 만나고 또만나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며 정주영 창업주가 밟아온 거처럼 또다른 ‘처음’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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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유력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2022 세계 자동차산업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들’ 시상식에서 ‘올해의 비저너리(Visionary of the Year)’상을 수상했다. 정의선 회장이 『뉴스위크』 특집호 표지 대형 포스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 현대자동차
◇ 운동화에 전자시계 차고 다니는 총수
2017년 6월 하얀색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당시로선 파격적인 복장의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소형 SUV ‘코나’ 첫 공개현장에 들어섰다. 하와이 휴양지에서 이름을 따 온 코나 컨셉트에 맞춰 캐쥬얼 복장을 택했다고. 그리고 다시 2년 후 정 회장은 ‘복장 완전 자율화’를 회사내 도입했다. 넥타이부대로 불렸던 현대차그룹내 직원들이 당시 정 회장이 입었던 그 스타일의 청바지와 흰 티셔츠, 운동화를 근무복으로 입게 된 순간이다.

지난 2021년 2월 정 회장은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정세균 국무총리를 접견했다. 말쑥한 정장차림이지만, 아래는 투박한 운동화다. 이 운동화는 20만원대 프랑스 브랜드 ‘살로몬’ 제품으로 전해졌다. 발 편하기로 소문난 이 운동화는 실용적일 뿐 아니라 가격도 합리적이다. 포털에 ‘착화감 좋은 운동화’를 검색하면 가볍고 편하다며 추천되는 제품이다. 격식 차린 자리에 운동화라니, 언밸런스 해 보일 수 있지만 이날 정 회장은 직접 총리를 모시고 현대차가 자랑하는 ‘엑스언트 수소전기트럭’을 시연, 그 우수성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10톤에 달하는 대형트럭을 몰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복장이었던 셈이다.

현대차그룹 총수의 시계는 얼마나 비싼 명품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구성 좋기로 유명한 카시오의 계산기 시계다. 불과 몇만원에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 회장이라고 값비싼 고급 시계 하나 없겠느냐마는 평소 애용하는 시계가 계산기를 겸하고 있고, 알람기능과 초단위까지 정밀하게 잴 수 있는 전자시계라는 점에서 정 회장의 실용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럼 정 회장이 스스로 ‘중독 수준’이라 할 정도로 즐기는 음식은 뭘까. 값비싼 참치회? 캐비어? 정답은 ‘맥도날드 버거’다. 지난 달 ‘2022 뉴욕오토쇼’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출장을 간 정 회장이 ‘점심으로 뭘 먹었느냐’는 특파원 질문에 “맥도날드 참 좋아한다. 거의 중독 수준”이라면서 “드라이브스루로 주문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수많은 미팅, 분초를 다투며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정신 없는 일정 속 가장 실속 있는 메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같은 실용 정신은 정 회장을 대변하는 수많은 경영 철학 중 핵심인 ‘품질 경영’에 잘 녹아 있다. 할아버지 정주영 창업주와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이 끊임 없이 강조 했던 가치가 바로 ‘품질’이다. 1999년 미국 자동차평가기관인 JD파워 평가 ‘꼴찌’에서 23년만인 올해 2월 ‘1위’로 뛰어 오른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정 회장 모교인 고려대학교 졸업식에서 영상 축사로 후배들을 격려한 멘트를 통해 그 배경을 가늠해 볼 수 있다. 89학번 선배로서 정 회장의 조언은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함에는 분명하고 날카롭고, 강력한 힘이 있다”였다. 정 회장은 “단순해 진다는 것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 단순함은 현대차가 끊임 없이 추구해 온 ‘품질’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정 회장은 매년 새해 임직원 메시지를 통해 “고객 존중의 첫걸음은 품질과 안전”이라며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완벽함을 추구할 때 고객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다”고 단순한 이 얘기를 반복 또 반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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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보스턴 다이내믹스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현대디자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제공 = 현대자동차
◇ 직접 프레젠테이션 하는 총수… 조부로부터 이어 받은 위기 돌파 DNA
정 회장의 경영능력을 평가할 때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직접 만나 설득하고 관철 시키는 특유의 돌파력, 추진력이다. 정주영 창업주가 500원짜리에 새겨진 거북선 하나로 영국 A&P 애플도어 회장을 설득, 자금을 빌려 지금의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건설한 일화를 기억한다면 지금의 정 회장의 DNA가 어디서 왔는 지 유추할 수 있다.

2019년 현대차그룹 경영권을 뒤흔든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 사태를 해결한 건 다름 아닌 정 회장의 뛰어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었다. 당시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해 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무산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엘리엇에 유리한 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하고 현대차와 모비스를 합쳐 총 8조3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배당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위기의 상황에서 정 회장은 해외 연기금과 금융계 큰손들을 직접 만나 그룹의 비전과 개편 방향을 수치까지 세심히 준비해 설명했고, 결국 이들이 정 회장에 손을 들어주며 표 대결에서 압승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엘리엇 역시 주주들에게 투표를 호소하는 서신을 발신했지만 정 회장이 직접 나선 프레젠테이션 효과를 넘어서진 못했다는 평가다.

2020년 7월, 무려 160조원에 달하는 정부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발표에서 재계를 대표해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것도 정의선 회장이다. 당시 디지털 뉴딜을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그린 뉴딜을 정 회장이 전 국민에 생중계 되는 카메라 앞에서서 설명했다. 순수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기반의 그룹 미래 경영 비전을 소개했는데 긴장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무대였다고 업계는 평가했다. 물론 리허설은 수차례 했지만, 단 한번의 NG도 없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그린 뉴딜은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경쟁력을 어필하고, 또 수소차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백년대계였다.

2019년 10월 무려 1200여 명의 임직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도 직접 만나 돌파하는 정 회장 경영 스타일을 여실히 드러낸 장면 중 하나다. 임직원들은 당시 정 수석부회장의 애칭인 ‘수부’를 연신 외쳤고 셀카를 먼저 제안하는 등 편안한 분위기 속에 미팅은 진행됐다. 복장 자율화를 시작으로 부장 호칭 폐지, 승진연차 폐지, 조기 승진 기반 마련 등 고강도 조직 쇄신에 나선 상황에서다. 회장 취임 직후엔 현대차 노조와 만나 “신산업 격변시대에 노사 합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어필하며 손을 잡기도 했다.

재계를 하나로 모으고 큰 일을 벌이는 건 이젠 정 회장의 장기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잇따라 만나 배터리 협력에 손을 잡았고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한 범국가적 사업을 위해서는 재계와 지자체를 하나로 엮은 수소 동맹까지 결성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는 수차례 만나 조율하며 현지에 대규모 전기차 거점을 만드는 데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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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22)’에서 ‘이동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다(expanding human reach)>’ 를 주제로 보도발표회를 열고 로보틱스 비전을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마크 레이버트(Marc Raibert) 보스턴다이내믹스 회장이 주먹인사를 나누는 모습. /제공 = 현대자동차.
◇ “인류의 삶에 기여하고 싶다” 車 넘어 로봇·나는 차까지
“휴대폰처럼 스팟(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개)을 데리고 다니는 시대가 올 겁니다.”

2020년 12월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약 1조원에 인수한 정 회장이 1년 후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다. 정 회장은 “로봇이 점점 인간과 가까워 지고 있다”면서 “로봇은 인류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이 “고마워 스팟. 넌 훌륭한 친구야. 나중에 보자”라고 말하자 스팟은 스스로 무대에서 사라졌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나왔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법한 장면을 연출한 정 회장은 이번에도 캐주얼 복장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고 현대차가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 세상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다.

소위 날으는 차 ‘UAM’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탑승객은 허브를 통해 자율주행 PBV로 갈아타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당연히 연료는 수소 또는 전기다. 모든 과정은 인공지능 로봇과 소통하면서 이뤄진다. 현대차가 2020년 공개한 ‘스마트 모비리티’ 청사진이다.

정 회장은 앞서 2020년 10월 임직원과 진행한 타운홀 미팅을 통해 “그룹의 미래는 자동차, 개인항공(PAV·UAM),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중장기 큰 그림에 대해 밝힌 바 있다. 하늘을 나는 차와 로봇이 미래 핵심 먹거리가 된다는 설명에 자동차 전문가들은 일제히 우려를 쏟아냈다. 한 자동차전문가는 “현대차가 자동차 외길을 파도 부족 할 판에 너무 많이 판을 벌이려 한다”며 “투자가 수익으로 연결 될 시점은 너무 먼 미래라 고민해야 할 게 많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 뉴욕 특파원들에 둘러싸인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에 대해 “인간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2016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의 목표는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가 되는 게 아니라, 고객이 더 편안하고 안전한 차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고,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선 수직이착륙 비행체 PAV를 공개하며 “사람들을 유의미하게 연결하고 교통의 한계에 제약받지 않게 하는 게 현대차가 그리는 미래”라면서 “저희가 발전시켜 나갈 미래를 지켜봐달라”고도 했다.

정부와 현대차가 말하는 UAM 상용화 시점은 2025년, 불과 3년 후다. 전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은 오는 2028년까지 연평균 44.5% 성장률로 시장규모는 469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현대차뿐 아니라 삼성 등 대기업들이 AI와 로보틱스를 유망 먹거리로 삼아 총력전을 벌이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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