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파워]정기선 경영 보폭 넓혔지만 승계는 황소걸음…7300억 상속세 숙제

최서윤 기자 기사승인 2022. 03. 25. 07:00

  • 카카오톡 링크
  • 트위터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주소복사
  • 기사프린트
  • 글자 작게
  • 글자 크게
대주주 정몽준 이사장 지분 압도적
부친 지분 상속 받아야 경영권 방어
일부 매각·배당금 활용 가능성 커
실적 끌어올려 경영능력 보여줘야
basic_2021
2021090801010006879
오너 3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이 등기임원에 오르면서 경영 보폭을 빠르게 넓혔지만 승계 작업은 황소걸음을 못 벗어나고 있다. 정기선 사장의 보유 지분이 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향후 부친 지분을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때 73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재벌 총수들은 상속·증여세 과세 가액을 최대한 낮추려고 계열사 주식을 맞교환하거나 비상장사 계열사를 통한 우회 상속 등의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시장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 지분을 늘리는 정공법도 있다. 정기선 사장은 소위 승계 자금줄인 비상장사 보유 지분이 없다. 또한 부친이 아직 70대 초반이라 상속을 운운하긴 이르고 조금씩 수차례에 걸쳐 증여를 통한 지분 확보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승계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기선 사장은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것과 동시에 원활한 승계를 위해 경영능력도 입증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정기선 사장은 오는 28일 현대중공업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될 전망이다. 선임 안건이 통과되면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과 공동 대표이사를 맡게 된다. 앞서 지난 22일 한국조선해양 정기 주총에서도 정 사장은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30년 넘게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3세 경영은 본격화했지만 여전히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아 승계는 갈 길이 멀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사 현대중공업지주를 필두로 핵심 사업인 조선업, 정유업, 건설기계 등 중간 지주사 3곳을 통해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 대주주는 지분 26.6%(2101만1330주)를 보유한 정몽준 이사장이다. 정 사장 지분은 5.26%(415만5485주)로 미미한 수준이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부친 지분을 막대한 세금을 내고 상속받아야 한다.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 가치는 최근 주가 기준 약 1조1200억원이다. 상속·증여세 최고비율은 50%(30억원 이상 상속 및 증여시)이고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을 포함하면 최대 65%다. 이를 적용하면 정 사장이 마련해야 할 상속세는 약 7300억원에 달한다.

정 사장은 다른 오너들과 달리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외에 유의미한 계열사 지분이 없어 이를 통한 재원마련은 기대할 수 없다. 한국조선해양 544주, 현대일렉트릭 156주, 현대건설기계 152주가 전부다. 모두 합쳐도 5870만원에 불과하다.

결국 증여와 상속을 동시에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차례 걸친 증여 통해 지분을 조금씩 늘리고 이에 대한 재원은 배당 수익과 연봉을 통해서 조달하는 것이다. 마지막엔 상속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해 154억원의 배당금을 수령했고, 지난해는 229억원을 받았다. 상장을 앞둔 계열사를 통해 정 사장의 지분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현대삼호중공업과 지주 매출의 72%를 차지하는 현대오일뱅크 기업 가치가 오르면 그룹 최정점에 있는 정 사장의 지분 가치도 커져 승계 재원 마련이 수월해진다.

경영권 침해 범위 내에서 승계받은 지분을 되파는 정공법을 택할 수도 있다. 12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하는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대표 사례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최근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 1994만1860주를 약 1조3700억원대에 매각했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도 각각 삼성SDS지분 301만8860주를 블록딜로 매각해 현금 1900억원을 확보했다.

재벌그룹들은 최소한의 지출로 최대한의 지분을 승계하기 위해 변칙 증여를 해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SK그룹은 과거 주식 헐값 인수를 통해 오너 지분을 늘렸다. 최태원 회장은 워커힐호텔 가치를 높게 책정해 지주회사격이었던 SK 주식과 맞교환해 대주주로 등극해 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한화 3세 형제들이 지분 100% 보유한 비상장사 에이치솔루션(현 한화에너지)는 계열사 일감을 몰아줘 사익편취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정 사장은 원활한 승계와 실질적인 지배력 강화를 위해 경영능력도 입증해야 한다. 경영실적이나 주가 등에서 특출난 성과를 내야 오너경영에 대한 내부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맡는 동안 내부거래로 실적 고속성장을 끌어낸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 승계와 경영실적을 동시에 이뤄내야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며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려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하지만 주가 상승은 상속세 비용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자로서 역량을 입증하지 못하면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